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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안녕탐 / 2018. 8. 23. 22:46

"모든 싸움이 승리이자 비극이며
모든 인물이 영웅이자 악당"
조지 R.R. 마틴 옹의 엄청난 세계관과
많은 등장인물 모두 다르고 확실한 캐릭터.
영화보다 대단한 스케일.
세상은 권선징악이 아니라는 것.
대단한 드라마다.
아니 이건 드라마가 아니다.
그냥 왕좌의 게임이다.

점점 멋져지는 존스노우
이그리트랑 현실 결혼함!

용엄마 대너리스
존멋
Posted by 터프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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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손 인지용?
ㅇㅈ!!

Posted by 터프카리스마
, |

이 드라마가 가장 공들여 다루는 화두가
삶에 대한 연민과 위로임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勇氣)'도 
그에 못지 않은 화두라 생각합니다.


동훈의 용기는 이미 증명됐습니다.

세상 모두가 외면하고 배척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만을 품은 영혼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 수 있었던 용기.
그 과정에서 수반될 오해와 의심의 눈총을 
기꺼이 함께 감수한 용기.
그 영혼에게 가해지는 외력의 실체를 알고는
무작정 돌진할 수 있었던 용기.
금이 쩍쩍 간 음침하고도 육중한 건물의 계단을
올라가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음에도,
게다가 참혹한 진실을 알았음에도
무자비한 주먹을 받아냈던 용기.
위악의 절규로 자신을 떨쳐내려는 영혼을
단호하게 다시 잡아줄 수 있었던 용기.
치사하고 비겁한 불의에 주먹을 날릴 수 있는 용기.

그런 동훈의 용기에
마침내 지안이 응답합니다.

상무후보 자격심사를 위한 청문회,
동훈을 궁지로 몰기위한 상대측의 악의적 의도에 몰려
지안은 뜻하지 않게 발언석에 앉습니다.

여기 그녀의 발언이, 이야기가
아니 용기있는 고백이 있습니다.

"배경으로 사람 파악하고 
별 볼 일 없다 싶으면 빠르게 왕따시키는 직장문화에서 
스스로 알아서 투명인간으로 살았습니다.
회식 자리에 같이 가자는, 그 단순한 호의의 말을
박동훈 부장님한테 처음 들었습니다.
박동훈 부장님은 파견직이라고, 부하직원이라고
저한테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을 좋아합니다. 존경하구요.
무시와 천대에 익숙해져서
사람들한테 별 기대도 하지 않았고
인정 받으려고 좋은 소리 들으려고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잘 하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어쩌면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오늘 잘린다해도 
처음으로 사람대접 받아봤고
어쩌면 내가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해 준
이 회사에게, 박동훈 부장님께 감사할 겁니다.
여기서 일했던 삼개월이
21년 제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습니다.
지나가다 이 회사 건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고
평생 이 회사가 잘 되기를 바랄 겁니다."

우리는, 아니 최소한 저는
누군가를 변호하기 위해 그것도 공개석상에서
이토록 진솔하고 용기있게 말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동훈과 지안의 용기는
그들에게서 그치지 않습니다.

십년 전 잘못에 대해 기훈이 보여 준
진심어린 사죄의 용기,
그 사죄를 눈물로써 받아들여 준 유라의 
진심어린 용서의 용기.
기훈의 뺨을 힘차게 때린 후
그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쏟아내는 
회한과 용서의 눈물.

이준익 감독의 2008년작 [님은 먼 곳에]를
기억하십니까?
자신을 버리고 전쟁터로 도망친 남편을 찾아
베트남 전장으로 뛰어들어
천신만고 끝에 남편을 만난 후
'순이(수애)'가 상길의 가슴을 마구 때리며
흘리던 눈물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흐르던 'Danny Boy'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12화는 유독 아름다운 시퀀스가 많았습니다.

지하철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려가는
동훈 일행과 지안의 활기찬 전력 질주,
그리고는 동훈과 지안의 대화...
"너 나 왜 좋아하는지 알아?
내가 불쌍해서 그래.
니가 불쌍하니까 
너처럼 불쌍한 나 끌어안고 우는 거야."
"아저씨는 나한테 왜 잘해 줬는데요?
똑같은 거 아닌가?
우린 둘 다 자기가 불쌍해요..."


지안을 집으로 데려다주는 
후계동 패밀리의 따뜻한 동행(同行)...
청록색을 중심으로 아날로그적 감성을 잡아내는
카메라의 따뜻한 시선.

정희가 지안에게 팔짱을 끼며 말을 겁니다.
"우리도 아가씨같은 이십대가 있었어요."
"전 빨리 그 나이 됐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덜 힘들 거잖아요."

지안이 집에 들어간 후 정희가 말하죠.
"생각해보니 그렇다. 
어려서도 인생이 안 힘들지는 않았어."

윤희에게는
아무리 씻어내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지긋지긋한 과거와 추억의 찌꺼기처럼 느껴질
후계동 패밀리는, 실은 
혼자서는 이 세상의 외력에 맞서기 힘든
상처입은 영혼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연대의 공간입니다.
이제 그 공간에 지안이 편입될 수 있다면
그 연대는 언젠가부터 단절된 두 세대를 
다시 이어줄 수 있겠죠.
그리고 그 연대의 중심엔
처연하지만 아름답고 눈물 많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정희가 있습니다.
언제나 그대로인...
"그대로더라..."


광일이 지안을 찾습니다.
"좋아하니까 때렸겠니? 미워하니까 때렸지.
"그래서 미운 마음이 풀리디?"
"마음이 왔다갔다 한다.
확 죽여버릴까, 그냥 내가 죽어버릴까..."
미움의 끝에서 허무를 목격한 광일의 뺨에도
뜨거운 눈물이 흐릅니다.

반면,
왜 여자들이 박동훈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고
박동훈 주변 여자들은 왜 다 이 모양 이 꼴일까,
탄식하는 준영은
자격지심과 질투와 욕망의 끈에 몸이 묶인 채
오래도록 허우적거릴 것입니다.


청문회를 마치고
동훈과 지안이 모처럼 술집에서 마주 앉습니다.

"용감하다.
근데 나 그렇게 괜찮은 놈 아냐."
"괜찮은 사람이에요. 엄청.
좋은 사람이에요. 엄청..."

윤희에게 사망선고를 받았던 동훈의 영혼이
지안의 용기있는 위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동훈의 얼굴에 돌아오는
쓸쓸한 미소...
그 미소를 바라보는 지안의,
마치 모든 걸 초월한 듯 보이는 
알 수 없는 눈빛...


그리고 이제
동훈과 지안, 기훈과 유라, 정희와 겸덕,
더불어 윤희, 준영, 광일이 끌어안은
마음의 지옥은
고스란히 우리의 형벌이 되어
보름 가까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애타게 하겠죠.

그래도 기다릴 겁니다.
그들의 남은 이야기들을,
또한 우리들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보고나면 정서적, 심리적으로 탈진되어
몇 일을 끙끙 앓을 지라도
마치 정희네 들르듯 부족한 글을 찾아와
쓸쓸하고 허허로운 마음을 나누고 싶어하는
우리의 불쌍한 동훈과 지안들을 위해서라도
꿋꿋이 기다리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용기입니다...


출처 http://mlbpark.donga.com/mp/b.php?m=user&user=hixx64&site=donga.com

Posted by 터프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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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다린다는 설렘이 생긴 지 3주가 됐습니다.
만남이 있은 후에도
깊고 진한 여운 때문에
멍하니 앉은 자리를 떠날 수 없는...
tvN의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그 대상입니다.

방영 첫 주가 지난 후부터 리뷰를 쓰고 싶었지만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러나 이젠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네요.

[미생], [시그널]이란 두 드라마로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의 새 지평을 열었던 김원석 감독,
[또 오해영]에서 
대사의 찰진 감칠맛을 느끼게 해 주었던
박해영 작가의 합작품이죠.


여기 두 남녀가 있습니다.

45세 남자 '동훈(이선균)'.
대기업 삼환 E&C에 근무하는 건축구조기술사.
대학 후배인 '준영(김영민)'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한직으로 내몰린 만년 부장.
변호사인 아내 '윤희(이지아)'는 준영과 외도 중.
하나 뿐인 아들은 외국에서 유학 중.
노모에게 얹혀사는 궁상맞은 형제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유일한 낙인,
소심하고 내성적이지만 
인내심과 배려심 만큼은 남다른 남자.
나이를 먹은 '장그래'로도 보이기도 하는,
미생의 삶을 살아가는 남자...

21세 여자 '지안(이지은)'.
여섯 살에 부모를 여의고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할머니를 홀로 부양하다
할머니를 폭행하는 사채업자를 살해한,
감당하기 힘든 진실을 감춘 여자.
그 사채업자의 아들인 '광일(장기용)'에게 
여전히 시달리면서도 
사랑하는 할머니로 인해 
함부로 삶을 포기할 수도 없는 여자.
특기도 취미도 달리기 뿐인,
달릴 때는 내가 없어진다는,
근데 그게 진짜 나 같다는 여자.
세상에 대한 증오에 웃음과 따뜻함을 잃고
사람들을 향한 경멸과 혐오만 남긴 여자.
하지만,
몰래 가져 온 쇼핑카트에 병든 할머니를 태우고
보름달을 선물하는 착한 감성을 지닌 여자...


그 둘은 왠지 서로에게 눈길이 갑니다.
자신의 어깨에 천근짜리 짐을 얹고 있건만
상대방의 어깨에 얹혀진 만근짜리 짐에 
더 눈길이 갑니다.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짐에 눈길을 주기엔
자신의 삶이 너무도 가엾고 불쌍해서인지
동훈과 지안의 연민과 위로는 서로를 향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은 다 잘 돼."
"나도 싫어해 줄래요? 
엄청나게 끝간 데 없이, 아주아주 열심히.
나도 아저씨 싫어해 줄게요. 아주아주 열심히." 

"내가 유혹에 강한 인간이라 여태 사고 안 친 것 같아?
유혹이 없었던 거야." 

"지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잠이 오지?
어떻게 하면 월 600을 벌어도 지겹게 보일 수 있을까?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나도 무릎 꿇은 적 있어.
그 와중에도 다행이다 싶은 건 
우리 가족은 아무도 모른다는 거야.
내가 무슨 모욕을 당해도 우리 식구만 모르면
아무 것도 아냐." 

"누가 나를 알아. 나도 걔를 알 것 같구.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어." 

"내가 오늘 못 죽어. 비싼 팬티가 아냐." 

"누가 욕하는 거 들으면 그냥 모르는 척 해.
내가 상처받은 거 아는 사람 불편해. 보기 싫어.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아냐." 
"그러면 누가 알 때까지 무서울 텐데." 
"모르는 척 해줄게. 너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그러니 너도 약속해주라. 모르는 척 해주겠다고.
겁나. 넌 말 안해도 다 알 것 같아서." 

"밥 좀 사주죠." 
"술도 사줄게." 

"내가 불쌍해서 마음이 편해지셨나? 막 사주네?" 
"내 인생이 니 인생보다 낫지 않고,
너 불쌍해서 사주는 게 아니라 고마워서 사주는 거야."

"현실이 지옥이야. 지옥에 온 이유가 있겠지.
벌 다 받다 가면 되겠지." 

"인생도 내력과 외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인생의 내력이 뭔데요?"
"몰라."


둘 사이에서 선문답처럼 오고가는 대화들,
다른 이들과 함께 할 때 서로를 묘사하는 대사들은
이렇게 한없이 어둡고 비관적이고 쓸쓸하지만
묘하게도 깨달음과 위로를 줍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고맙다", "착하다", "행복하자", "파이팅",
심지어 술잔을 부딪치는 건배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관성처럼, 습관처럼 
무심코 내뱉는 말과 행동들이
이 드라마에서는 너무도 신중하고 소중하게 쓰여
곱씹고 또 곱씹게 만드는 매력으로 탈바꿈하죠.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이 멋진 대사들은
이선균과 이지은, 두 배우의 훌륭한 연기에 의해
의미와 생기를 부여받습니다.
대본이 완성된 후 배우를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두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대본으로 느껴지죠.

'억울갑'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우는
이선균 배우는 이제 경지에 도달한 느낌입니다.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대사의 리듬감이 좋습니다.
대사 없이 훅훅 내뱉는 숨소리도 좋습니다.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애써 감춘 듯한 표정과
문득문득 분출되는 정의감도 좋습니다.

아이유, 아니 이지은은 
이제 배우로서 불려도 충분합니다.
그녀만이 갖고있는 특유의 우울함은
이지안이라는 독특한 배역을 통해 빛을 발합니다.
대한민국 드라마에 이런 캐릭터가 있었을까요.
굳이 찾자면,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떠오르네요.
냉혹한 현실을 온 몸으로 버텨내는 여자.
다만, 리스베트에게는 가죽재킷이 있지만
지안은 춥게 입었을 뿐이고
리스베트는 오토바이로 질주하지만
지안은 그저 달릴 뿐...


김원석 감독의 작품에서 
낭비되거나 버려지는 인물이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그 부분은 변함이 없습니다.
모든 조역들의 연기력이 만족스럽습니다.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빛나는 건 
'송새벽' 배우입니다.

2009년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세팍타크로 형사'로 충격적인 데뷔를 했고
2010년 [방자전]과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대체불가능한 개성을 보여주었다가
이미지의 과소비와 슬럼프로 
어느새 잊혀진 배우가 되었던 그는
동훈의 동생, 기훈으로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예전의 그와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으로.
[나의 아저씨]의 무게중심을 
든든하게 잡아주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송새벽으로 느껴집니다.

한 때 잘 나가던 신인 영화감독에서
끝없는 추락을 거듭한 기훈에게
기훈의 추락을 그리도 원했던 '유라(나라)'가 말하죠.
"인간은 평생을 망가질까봐 두려워하고 살아요.
망한 감독님이 아무렇지 않아서 좋아보였어요.
망해도 괜찮구나.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망해도 행복할 수 있구나."


네 그렇습니다.
일부 사람들의 모진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에 시달리는
이 명품 드라마는
늙은 남자와 어린 여자의 사랑을 예쁘게 포장하는,
그런 못난 작품이 아닙니다.
 
두 어깨에 한가득 짐을 얹고
천근만근 두 발을 질질 끌고
망하면 어떡하지 하는 속절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지옥같은 현실을 버텨내는,
그래서 때로는 
스스로가 너무 가엽고 불쌍하게 느껴지는,
우리들, 그냥 보통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그 정도면 잘하고 있다고
위로와 용기를 주는 드라마입니다.


이제 이 드라마는 이야기의 반을 끝냈습니다.
동훈과 지안의 이야기가,
그들을 둘러 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디로 향할 지를, 나는 모릅니다.
동훈과 지안의 서로를 향한 연민과 위로가
마침내 스스로에게 가 닿을 지를,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드라마가 마침표를 찍는 순간
가슴이 벅차 리뷰를 쓸 것임은 알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음악을 빼놓을 수 없겠죠.
지안의 테마로 쓰이는 "어른"이란 곡이 특히 끌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듣습니다.
가수는 'Sondia'입니다.
그 곡의 1절 가사를 알려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 아무도.
눈을 감아보면 내게 보이는 내 모습
지치지 말고 잠시 멈추라고.
깰 것 같지 않던 짙은 나의 어둠은
나를 버리면 모두 갤 거라고...



출처 http://mlbpark.donga.com/mp/b.php?m=user&user=hixx64&site=donga.com

Posted by 터프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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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초반에 상훈과 기훈은 심각하게 어른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자신과 가족을 건사한다는, 한 사람이 어른으로 불리는 데 절대적인 필요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훈이 가장의 자리를 상실하고 기훈이 마흔 넘어서도 어른대접 대신 "많이 이상한 애" 취급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절박한 상황에서 청소방을 시작한 상훈이 갑질하는 사내 앞에 무릎을 꿇고, 천재 감독의 아우라를 잊지 못하던 기훈이 "몸을 쓰고 몸을 느끼는" 일의 미덕을 예찬하며 동훈에게 고급 참치를 샀을 때, 

상훈과 기훈은 그들에게 집요하게 어른의 자격을 추궁하던 어떤 통과의례를 가까스로, 잠시나마 통과한 셈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속력을 높이거나 급커브를 틀어도 휘청이고 넘어지는 다마스처럼, 

그들의 어른행 드라이브는 여전히 위태위태하고 짠하다.

장판 아래에 늘어가는 오만원권 지폐들이 상훈의 가정으로의 복귀나 "인생의 기똥찬 순간"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 

여배우와의 "양심 없는" 연애를 기훈은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

상훈과 기훈 자신도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진 못할 것 같다.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답이 보이지 않아도 계속, 뻔뻔하게 악셀을 밟는 것뿐이다. 

그 가속의 결과가 또 한번 보기 좋게 넘어져 보기 흉한 기스 한 줄을 더하는 것뿐일지도 모르겠지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의 인생이 그들의 다마스처럼 보기보단 맷집이 좋고 튼튼하다는 것이다. 


툭하면 넘어지고 각종 우스꽝스런 곡예를 부릴지언정 부서지거나 멈춰 서진 않는, 그렇게 험하게 굴러먹었는데도 딱히 심하게 찌그러진 구석이 보이진 않는 신통방통한 다마스는 그 주인들을 어딘지 모르게 많이 닮아 있다.

작고 낡은 그 다마스가 어떤 외력에도 상훈과 기훈의 몸만큼은 어디 하나 상한 곳 없이 지켜주었듯이, 

부침 심한 인생의 곡예를 견뎌온 두 사람의 내력이, 

그리고 그 내력의 근원이기도 할 "나는 내가 좋아"라는 신비한 자기애와 낙관적 천성이 

앞으로도 상훈과 기훈을 어떻게든 지탱해주고 어찌어찌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것 같다.

매일 욕은 들어도,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졸이게 하지 않고 뻔뻔하게 살아낼 줄 아는 상훈과 기훈이, 효자들이었다.



"한반도에 지진 6이 오겠냐?"

다분히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윤상무의 안이한 진단에 동훈은 '구조기술사는 구조적 판단만 합니다'라는 원칙으로 답한다. 

건축사와 구조기술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21살 지안의 눈에도 어느 쪽이 책임 있는 어른인지는 불을 보듯 자명하다. 

송과장처럼 과장급만 되어도 때로는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적 판단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배제해왔을 동훈이 "만년 부장"으로 지금껏 버텨냈다는 것만으로도 황송해야 할 일일지 모른다. 

구청에 제출할 안전진단 보고서에 "책임기술자 박동훈"이라는 이름과 함께 찍힌 도장에는 동훈의 전문성과 양심이 함께 꾸욱 찍혀 있다.

이 드라마에서 동훈이 보여주는 어른의 자격에는 직업적 양심과 시민성이 기본 옵션처럼 포함되어 있다. 

(어머니댁에 다녀오던 동훈과 윤희가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을 때 동훈은 사회적 약자에 관한 질문인 최저임금의 답을 맞추는 반면 윤희가 좀 더 정치적 성격을 띠는 지방선거 날짜를 맞추는 것은 상징적이다) 



"손녀는 부양의무자 아니야... 그런 거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냐?" 

동훈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말했을 수도 있는 이 말은 지안에게는 거대한 의미를 지녔다.  

후계동의 복지 담당 공무원도, 비싼 돈을 내고 봉애가 머물렀던 사설 요양원도 무슨 이유에선지 알려주지 않았던 이 정보로 지안과 봉애의 숨막히던 삶에 한 줄기 숨통이 트인다.

그때까지 지안에게 천만원을 벌 수 있는 '봉'이거나 '잘 사는 좋은 사람'에 불과했던 동훈은 이 일로 인해 지안과 봉애의 '은인'이 된다. 

(그리고 동훈이 광일과 싸우며 지안의 살인 전력마저 이해해주었을 때 동훈은 지안의 '마음의 은인'으로까지 격상된다)

동훈의 선의에 기댈 수도 있었던 지안이 결국 도준영의 돈으로 천만원의 빚을 갚고 도준영을 등쳐먹는 길을 택했을 때, 이미 지안은 결코 은인의 인생을 망칠 수 없다는 팽팽한 결의로 무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결의가 생전 처음 움텄을지 모를 정체불명의 감정과 충돌하기 시작했을 때, 

지안은 누구라도 소중히 하고 싶을 그 순정을 스스로 "미친 년"이 되는 방식으로 무참히 짓이기거나 

표독한 사람들의 눈 앞에 고통스럽게 전시하기까지 할 수 있었던, 

무섭도록 예의가 바른 '어른'이었다.



도준영은 여러 면에서 어른의 조건이 아닌 비어른의 조건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마치 일곱살짜리 아이처럼 그는 가지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면 안달이 나서 견디질 못한다

대학시절 좋아하는 여인을 따라 자신과 맞지도 않는 동아리에 들어갔다는 일화는 거기서 그쳤더라면 꽤 낭만적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번 갖고 싶어한 그것을 20년 동안 포기할 줄 모르고 탐한다

그가 안고 싶었고 갖고 싶었던 여인을 기어이 품에 안았을 때, 그래서 신이 난 아이처럼 동훈 앞에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을 때, 역설적으로 그의 몰락은 시작되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대가를 치르고 '이별의 예의'를 지키려 하는 윤희와 달리,

온전히 은인에게 예를 다하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은 물론 밥줄조차 내던질 수 있었던 지안과 달리, 

도준영은 선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내던진 사람이었고, 헤어진 연인에게 "니가 제일 비겁해" 따위의 말을 하는 후진 남자였으며, 자기보다 스무 살도 어린 여자의 마음을 조롱하고 만날 때마다 떼를 부리는 '아이'였다.

  


요양원에서 동훈은 뜻하지 않게 봉애로부터 유언에 해당하는 말을 받는다.

동훈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지안이의 옆에 있어주기를 바란 그 유언은 사실상 동훈을 지안의 '보호자'로 임명하고 있었고, 

봉애가 동훈의 손을 붙들어 이마에 갖다댄 그 멋쩍은 순간은 '슬픈 위임식'과 다름이 없었다.

동훈이 폭주하는 지안의 뒤통수를 가차없이 후려갈기고, 사람들을 대하는 지안의 태도를 꾸짖으며, 지안을 한 발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하는 것은, 

신도 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이런 보호자로서의 책무를 이행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동훈은 "선생님"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어른이었다.



지안이 받은 만큼 갚아준다는 '등가 관념'이 예민한 아이라면 동훈은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거리 감각'에 예민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그는 사수가 밀려난 자리에 올라가기를 꺼리는 사람이고, 첫 만남에서 밝게 인사하는 유라에게 데면데면 거리를 두는 사람이며, 20대에 이성과 보름 동안 숙식을 같이 하면서도 아무일도 없었던 사람이다.

아내 윤희의 간절한 바람에도 그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일정 거리 이상 결코 밀어내지 않으며, 

반면 정작 윤희와의 사이에서는 윤희가 바랐을 한없는 밀착을 회피하거나 거부한다.

 

이런 동훈에게, 그가 어쩌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마음의 후견인'이 되어버린 지안과의 사이에는 마치 지구와 달 사이에 유지되는 궤도처럼 절대적으로 유지되고 사수되어야 할 어떤 거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어떤 관계에서는 그 거리가 극복되어야 할 진공이나 장애일 수 있지만

지안과 동훈의 경우 그 거리는 오히려 두 사람의 동행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자 가능성으로 가득한 창공에 가까워 보인다. 

마치 조금만 더 가까워지거나 멀어져도 지구에 재앙이 될 수밖에 없는 달이 자기 궤도를 지키면서 지구의 밤을 밝힐 빛을 전달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동훈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궤도의 진폭을 조정하고 수정하는 위성처럼, 지안과의 거리를 조정하고 수정할 것이다. 

만일 지안이가 지나치게 가까워진다면 다시 한번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고 

지안이 어떤 외력에 의해 튕겨나간다면 힘껏 쫓아가 붙잡고 아마도 이런 말을, 몇 번이고, 투하할 것이다. 

"또 왜 어디 가는데?" "슬리퍼 왜 안 사오는데??"


언젠가 지안의 삶에도 찬란한 태양이 떠올라 달의 존재감 자체가 희미해지는 날이 왔을 때, 

지안이 마른 하늘에 여전히 떠 있을지 모를 쓸쓸한 달을 향해서 힘차게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을 보게 되기를,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깊이 바랄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달은 지구에 있어서 일방적으로 수혜를 주는 존재가 아니다. 궤도가 조정되고 유지되는 것은 달과 지구 쌍방의 힘에 의한 것이다. 

달이 지구의 밤을 밝혀주는 것 이상으로 지구는 달의 적막한 어둠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지구에서 볼 때 달은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지만, 달에서 볼 때 지구는 더 크고 더 아름답고 더 신비로운 존재다) 



남편으로서의 단점과 한계와는 별개로, 동훈이 보여주는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은 가끔 시청자를 좌절시킨다 

나는 아무리 해도 저런 어른은 될 수 없을 거 같은데.. 동훈이야말로 재벌2세를 능가하는 판타지가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달'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어른이 과연 존재하긴 할까 싶기도 하고 그나마 '선생님'이라고 경의를 담아 부를 만한 어른도 극히 드물다. 

이 드라마의 제목이 '나의 어른'이 아니라 '나의 아저씨'인 것은 그래서 차라리 시청자들을 위한 배려인 것처럼 보인다.

어른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 앞에서 처음부터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사람이라도

누군가의 평범한 '아저씨'나 '아줌마'가 되는 정도라면 조금은 가볍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다 만났을 때 반갑게 아는 체를 하고, 장례식에 찾아가주고, "우리 가게에 놀러와요"라고 얘기해주고, 안전한 귀가를 도와주거나 창문을 열어 이상한 놈이 기웃거리는지를 살펴봐주는 단순한 행위로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는 아닌 사람들이 된다 (사실 동훈이 지안에게 준 결정적 도움인 요양제도에 관한 정보도 누구라도 알려줄 수 있었을 종류의 것이었다)

'나의 아저씨'나 '나의 아줌마'가 아니라 그냥 '우리 동네 아줌마'나 '아는 아저씨' 정도로도 충분히 멋지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정희네 후계 패밀리나 안전3팀 사람들, "도와줘요?"라고 물어주었던 약사 아주머니 같은 사람들을 통해 보여준다)


고작 네 번 도움을 주고 도망치더라도.. 아니 딱 한 번 도움을 주고 말아버리는 수준이라 해도 괜찮다. 

"자기가 착한 사람인 줄" 확인하고 싶어서 베푸는 얄팍한 선의라 해서 나쁠 것은 없다. 한번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쌔고 쌨으니 말이다 (아마도 언젠가는 지안이도 자신에게 어설프게 선의를 베풀다 오히려 상처를 주었던 이들의 허약함을 이해하고 고마워하게 될 것이다)

단 한 조각의 선의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지옥을 허무는 기적이 꼭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리란 법은 없을 것이다. 



어른의 조건은 무엇인가

여전히, 그리고 드라마가 종영한 뒤라 해도, 한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드라마가 전하는 어른의 조건은 인간의 조건이라고 바꿔 말해도 아무 위화감이 없을 만큼 깊고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인간은, 인생은, 한 겹이 아니다.


그래도 이 드라마를 통해 어른을 묘사하는 몇 가지 표현 정도는 드라마가 끝나지 않은 지금이라도 충분히 추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른이란, 

생계와 가족을 위해 무릎을 꿇거나 평생의 꿈을 그저 꿈으로 남겨두는 것을 굴욕이나 패배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10년 전의 기훈처럼) 자신의 수치를 남의 수치로 가리는 치사빤스 같은 짓은 하지 않는 사람이고, 10년씩 묻어두었던 잘못도 고백하고 사과하고 책임질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이 걸려 있을 수 있는 문제 앞에선 손익 계산이나 정치적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는 사람이라고,

배경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별볼일 없다 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는 사람이라고, 

만나면 불편하고 껄끄러운 관계보다는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관계들을 늘려가고, 자기 사람들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살면서 한번쯤은 누군가에게 "나랑 친한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아"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미움이나 질투나 욕망의 발로에서가 아니라, 그저 선의에서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아스라이 흔들리는, 누군가의 간절한 수화에 마음을 다해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출처 : http://gall.dcinside.com/mymister/27937



Posted by 터프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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